목사로서 설교하기가 꺼려지는 주제가 하나 있다면 “돈”입니다. 일반 헌금이든지, 혹은 구제를 위한 특별 헌금이든지, 돈을 주제로 설교하는 것은 언제나 꺼려집니다. 돈을 주제로 하는 것이 꺼려지는 것은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냐하면 목사가 돈을 밝히는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사역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자칫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것이 오히려 헌금을 요구하는 것으로 들리지 않을까 하여 바울은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해야 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몇 주간 “구제”에 대해 설교하는 것은 제가 궁핍하기 때문도 아니며, 돈을 밝히는 사람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고린도후서를 설교하던 중에 ‘구제’에 대해 말씀하시는 구절에 왔기 때문이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마땅한 바이기 때문에 설교하는 것임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걱정이 있습니다. 현대의 사람들은 “권리”에 대해서 예민합니다. 요즘 시대가 특별히 인간으로서의 평등과 권리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혹 권리에 조금이라도 침해를 받았다면 굉장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이 요즘 세상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구제’에 대해서 설교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구제의 의무가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보다 구제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제 받는 것을 더욱 당연하게 여기며, 자신을 돕지 않는 사람을 정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권리가 아닌 의무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받을 권리 있는 자가 아니라, 주어야할 의무 있는 자의 자세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아무 것도 주지 못할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 우리의 의무를 생각하고 의무를 다하면, 은혜도 누리게 됩니다.

박현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