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묵상 4/3/2021 “부활하셨습니다!”

2021년 4월 3일 토요일성경: 마태복음 27장 57-66절제목: “부활하셨습니다!”(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60) 바위 속에 판 자기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61)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62)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63) 주여 저 속이던 자가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65)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66)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이생에서 끝나는 것이며, 영생이 없는 것이기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저 아무렇게나 살다가 죽으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삶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후 15:13-19).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합니다. 예수님께서 정말로 부활하셨다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분명한 것이요, 그렇다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신들의 죄에 대한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사흘이 지난 뒤에 무덤 안에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제자들이 훔쳐갔다는 거짓말을 퍼트렸습니다. 후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것이 아니라잠시 기절하셨던 것 뿐이라며,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으며,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해줍니다. 예수께서 숨을 거두신 날 저녁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는 사람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의 시체를 내주라고 명했고, 요셉은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쌌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을 이미 여러 번 확인했다는 것을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죽지 않은 사람을 십자가에서 내릴 리가 없고, 죽지 않은 사람을 빌라도가 내어줄 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예수의 시체를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돌을 무덤 문에 놓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사람들이 쉽게 무덤을 훼손하거나 시신을 훔쳐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갈까 하여 빌라도에게 경비병들로 하여금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도록 부탁했습니다. 이는 더더욱 시체를 누군가가 훔쳐갔다는 말이 그들이 만들어낸 거짓말인 것을 증거해주는 것입니다. 본문 61절에 보시면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무덤을 향해 앉아 있는 이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이들은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절망했을 것입니다. 아무런 소망도 없이 넋이 나간 채 무덤을 향해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은 아닐런지요?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내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으며, 우리도 부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결국에는 참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덤을 향해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있지 마시고,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 앞에 놓인 사명의 길을 담대히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사셨습니다!

고난주간 묵상 4/2/2021 “아들을 버리신 하나님”

2021년 4월 2일 금요일 성경: 마태복음 27장 45-56절 제목: “아들을 버리신 하나님!” (45)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 거기 섰던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48)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49)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5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에 대한 이미지는 대부분 강한 심판자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이란 존재는 잘한 것에 대해서는 상을 주고,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자비함이 없이 즉각적인 벌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대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없다고 주장하는 주된 이유들 중 하나는, 큰 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한 즉각적인 심판이 없으며,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선한 사람들이 희생을 당할 리가 없고,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가만 두실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결국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조롱은 계속 되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죽도록 내버려두실 리가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예수님을십자가에 못 박도록 한 사람들을 벌하실 것이요, 즉시 예수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이런 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예수님을 조롱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실 때에 구름이 해를 가려 어두워지고,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무덤들이 열려 죽은 성도들이 일어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졌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 일을 경험한 백부장과 몇몇 사람들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말하며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드디어 ‘하나님께서 화를 내시는구나’ 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였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분을 내지 않으셨으며,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즉각적으로 벌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주신 아버지께서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며 참고 계심을 느끼도록 해줍니다. 예수님은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소리치셨습니다. 이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들과는 달리, 자신의 아들을 죽기까지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서운 심판자가 아니라, 아무런 가치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달리도록 내어 주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와 같이 가치 없는 자들을 자녀 삼으시기 위해, 독생자의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분노를 참으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에 보시면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밷후 3:9). 우리는우리의 삶에 고난이 찾아오고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며 나를 구원해주지 않으시는 것 같을 때에 하나님을의심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을 넘어서, 때로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의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고난에 대하여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더 크신 사랑과 계획으로 인하여 참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는 변함이 없으며,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삶의 고난이 찾아와도, 내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도, 내 뜻대로 일이 되지 않아도, 오래 참으시는 우리의 아버지를 기억하며 믿음으로 인내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고난주간 묵상 4/1 “우리 때문입니다!”

2021년 4월 1일 목요일 성경: 마태복음 27장 27-44절 제목: “우리 때문입니다!”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33)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 거기 앉아 지키더라. (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예수님께서 결국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로마의군병들은 예수님께 홍포를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씌운 뒤에 “유대인의 왕”이라며 가짜 왕 놀이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치며 희롱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게 하고는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시게 했습니다. 본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동안에 채찍으로 예수님께 매질을 가했습니다. 오래 전에 “멜 깁슨”이라는 영화배우가 제작한 “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보시면, 역사적인 고찰을 거쳐 당시의 상황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는데,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동안, 상상할수 없이 심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당시 로마 군병들이 사용하던 채찍은 끝에 쇠로 만든 갈고리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채찍질을 하면, 맞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채찍 끝에 달린 갈고리가 살을 찢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동안 채찍에 맞아 살이 터지고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양쪽 손목과 발목에 대못을 박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은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조롱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쓴, 조롱 섞인죄패가 붙어 있었고,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원해보라며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예수님을 희롱하였고, 심지어는 죄를 지어서 십자가에 함께 못 박힌 강도들도 예수님을 욕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한 쪽에있던 강도는 예수님께 은혜를 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강도들 마저도 예수님을 모욕하였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 그 사실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신 오늘 본문의 사건을 대하시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통 당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불쌍하다, 안타깝다” 생각하는 것에 그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예수님의 당하신 고난에 대하여 불쌍하다고 느끼고 연민의 정을 느끼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대신에 우리는 우리가 당해야 할 조롱과 고난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당하신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우리가 그 조롱과 고난을 당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애통함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가 있어서 고난 당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 당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3장에 보시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사 53:5,6). 예수님께서 당하신고난은 원래 우리가 당해야 할 고난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 모든 고난을 대신 감당하게 하셨다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조롱과 고난 당하신 사건을 묵상하며,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대신 고난 당하게 만든 우리의죄에 대한 애통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조롱 당하며 고난 당하기를 기뻐하고, 기꺼이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에, 군병들이 구레네 사람 시몬으로하여금 억지로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합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시몬을 성자처럼 여기지만, 사실 예수님의지신 십자가는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기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우리의 죄를 애통해 하며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을, 잠시 세상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기뻐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에 죽은 것은 예수가 아니라 내 자신이기를 소망하고, 지금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시기를 소망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주간 묵상 3/31/2021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2021년 3월 31일 수요일 성경: 마태복음 27장 11-26절 제목: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15)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있는데 (17)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 빌라도가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대제사장들과 유대교의 장로들이 예수님을 총독 앞에 세웠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법으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수 없었기 때문에, 로마법으로 예수님을 처벌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18절에 보시면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빌라도의 아내 역시도 예수님에 대한 꿈을 꾸고는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바’라는 사람을 선택하여 ‘바라바’를 놓아줄지, ‘예수’를 놓아줄지를 묻습니다. 이 바라바에 대하여 오늘 본문은 ‘유명한 죄수’라고 설명하는데, 누가복음에서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도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라고 하셨고, 요한복음에서는 바라바를 “강도”라고 설명하십니다. 바라바는 무서운 사람이요 죄질이 나쁜 죄인입니다. 아마도 빌라도는 이런 극악무도한 죄수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예수를 놓아 달라 할 것으로 생각한 듯 합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합니다. 결국 빌라도는 민란이 일어날까를 두려워하여, 그들의 요구대로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빌라도가 사람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빌라도처럼 사람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자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실상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놓아주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12절에 보시면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14절에도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빌라도는 사람들의 고소하는 내용에 대해서 예수님이 변명하며 자신을 변호하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을 풀어줄 수 있는 어떤 근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으니, 이는 풀려나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풀려나시게 되면 인류를 구원하시려는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대신 극악무도한 강도 ‘바라바’가 놓임을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하여 죽어 마땅한 우리들이 영생을 얻게 되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준 것은 빌라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 드리고자노력했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가치 없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시기까지 엄청난 희생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일지라도, 은혜 자체의 가치는 이처럼 엄청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하나님께 드리기에 아까운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는 어떻게 감사할수 있을지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주간 묵상 3/30 “왜 나를 택하셨는지!”

2021년 3월 30일 화요일 성경: 마태복음 27장 3-10절 제목: “왜 나를 택하셨는지!” (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6)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8) 그러므로 오늘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9)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10)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한 것을 후회하며, 예수님을 배반한 댓가로 대제사장들과 장도들에게 받은 은 삼십을 성소에 던져 넣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그 은이 ‘핏값’이기 때문에 성전고에 넣어둘 수 없다고 생각하여,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일이 이미 예언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예레미야 19장과 스가랴 11장의 말씀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스가랴서의 말씀을 통해서는 예수님이 은 삼십 세겔 이라는, 당시 노예 한 사람의 값에 해당되는 헐값에 팔리게 될 것을, 그리고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통해서는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의하여 부당하게 피를 흘리실 것에 대하여 예언하신 것으로 봅니다. 어찌되었든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 세겔의 값으로 팔 것과 예수께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 의해 죽으실 것이 이미 예정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가룟 유다의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일이 예정되었다면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할사람으로 선택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 어떤 사람들은 가룟 유다에게 회개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회개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하며 가룟 유다에게 책임을 돌리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만일 가룟 유다가 구원을 얻지 못하였다면, 이는 그가 예수님을 배반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선과 악의 중립의 상태에 있다가 선을 행하면 구원을 얻고, 악을 행하면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이미 죄인이며, 그래서모두 죽음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죽음 가운데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렇게 말씀하셨고(롬 3:23), 우리는 이미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엡 2:1). 그러므로 가룟 유다 역시도 예수를 배반한 것 때문에 구원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는 죽음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계획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되지 않고, 우리에게는 아무런 공로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은 자들은 겸손합니다. 우리에겐 자격이 없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기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원 얻은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향해 온유합니다. 은혜 받지 못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왜 나를 택하셨는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것인지 고민하시는 한 주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또한 아직 은혜 받지 못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생각해보시고, 그들에게도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주간 묵상 3/29/2021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2021년 3월 29일 월요일 성경: 마태복음 26장 69-75절 제목: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69)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던 자리에서, 예수님은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발끈하며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그 말을 믿지않으시고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이렇게 말했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제자들도그와 같이 말했다고 말씀하십니다(마 26). 그러나 본문을 보시면,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예수와 함께 있지 않았다고 부인하였지만, 두 번째는 맹세하며 부인하였고, 세 번째는 아예 “저주하며 맹세하여” 부인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잡히시자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모두 도망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때에, 베드로가 세 번째 예수님을 부인하였을 때에 닭이 울었고, 베드로는 예수님의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하겠노라고 자주 결단합니다. 특별히 고난주간이 되면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더 많은 것들을 하겠노라고 결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의 힘과 의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와 함께 죽는 자리까지 가겠다고 결단했지만 예수님은 그가 그럴 수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인이요 선을 행할 의지가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하나님을 위해 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안에 임하시고, 성령께서 우리를 온전히 주관하심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자아를 부인하고, 나를 십자가에 못 박으며, 성령께 모든 것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주를 부인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이요, 의지가 약함을 인정하여 주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나는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잠잠히 성령의 역사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주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을 오히려 버리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나를 온전히 주장하시기를 소원하며, 말씀을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십시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고 역사하심에 온전히 나를 맡기고 순종하십시오. 고난주간을 통하여 나는 죽고, 부활의 아침에 ‘내 안에 사시는 이는 오직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고난주간 묵상: 유월절 어린양 예수

2020년 4월 11일 토요일 성경: 마가복음 14장 12-16절 제목: “유월절 어린양 예수” 찬송: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13) 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14)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5)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니라. 유대인들이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절기 중에 유월절과 무교절이 있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하나의 절기와 같습니다. 유월절은 단 하루이지만, 유월절 바로 다음 날부터 7일 동안 지키는 절기가 무교절이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노릇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시기 위해서 애굽에 열 번째 재앙을 내리셨던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애굽의 바로가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주지 않자, 하나님은 애굽의모든 장자를 죽이셨습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천사들로 넘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넘어간다’는 의미의 “유월절”을 지키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무교절은 유월절 이후 이스라엘이 급하게 출애굽하기 위해서 누룩을 넣지 않고 쉽게 구운 무교병을 만들었습니다. 무교절은 그 때 만들어 먹던 무교병을 먹으며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이 유월절의 어린 양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 어린 양을 죽여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죄로 인하여 영원한 죽음을 맞게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보혈을 흘리셨고, 그 보혈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출애굽의 유월절 사건은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곧 유월절의 어린 양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유월절 만찬을 준비히기를 원했습니다. 만찬을 할 마땅한 장소가 없었던 제자들은 어디에서 유월절 만찬을 먹을 것인지 막막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날 것인데, 그 사람에게 ‘유월절 음식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만찬을 위해 준비한 큰 다락방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친히 유월절만찬을 준비하셨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준비하여 얻는 것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죄를 사하실 유월절 어린 양이 되어 주시고,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사 모든 잔치를 마련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우리의 노력으로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곧 하나님은 우리가 “아버지,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이렇게 고백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보며 평생에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제가 잘 하겠습니다. 그저 약간의 도움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렇게말합니다. 그리고는 내가 드러나고, 내가 영광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열심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지 않습니까?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온전한 굴복이요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홀로 영광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고난 주간은 우리를 위해 대신 고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함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는 주간입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셨음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을하기보다,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은혜들을 알고 묵상하는 일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항상 겸손하며,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올려 드리는 하이랜드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주간 묵상: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

2020년 4월 9일 목요일 성경: 마가복음 12장 13-17절 제목: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 찬송: 486장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13)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4)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15)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16)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17)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미국에서는 부활절과 함께 같이 오는 날이 있습니다. 곧 세금 보고 마감일입니다. 이번 년에는 Covid-19 으로 인해서 세금보고 마감일이 미루어졌지만, 원래대로라면 4월 15일이 세금 보고 마감일입니다. 부활절 즈음에 항상 세금 보고 마감일도있습니다. 세금은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금을 안 낼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금을 내야 합니다. 하루는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헤롯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예수님께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지 아니한지’를 물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이스라엘의 율법을 중시하는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로마에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많았습니다. 반면에 헤롯당은 정치적 권력을 얻기 위해서 로마와 타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로마에 세금을 바치는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예수님을 찾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렇게도 저렇게도대답하시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에 대해서 대답하지 않으시고, ‘이 세상은 우리의 본향이 아님’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라’ 하시고는 이것이 ‘가이사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곧 이 세상이가이사의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잠시 악의 세력에 빼앗겼지만, 우리의 열심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때에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들은 하늘로 들려 올라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결코 우리의 집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이 세상에 나와 있는 나그네들입니다.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벧전 2:11). 나그네들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의 법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습니다. 다만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의 법을 따를 뿐입니다.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잠시 머물다 갈 곳이기 때문입니다. 머무는 곳의 법을 따르는 것은, 법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이 우리의 영원한 본향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과 미국은 선거철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누구를 지지해야 할까요? 사람들은 좋은 세상 만들기 위해서 투표를 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시면 바리새인과 헤롯당원이 함께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한쪽은 정부에반대하는 사람들이고, 한쪽은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예수를 반대하는 일에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러합니다. 이들은 이 세상을 좋은 세상 만들고자 노력하지만, 예수를 반대하는 일에는 하나가 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았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잠시 세상에 머물다가 가는 하늘나라 시민들입니다. 세상을 바꾸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하늘나라 시민으로서의 삶을 세상에보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본향을 바라보며,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이는 이 세상에서의 형통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하늘나라 본향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는것이 세상에서의 복을 받기 위함이라면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며 기념하는 것은, 우리가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잠시 세상에 머물다가 본향으로 돌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사시기를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