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소원대로 계단 있는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위 아래로 뛰어다니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계단이 좋지만, 나이 든(?) 우리들은 위 아래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힘이 듭니다. 그래서, 한번 자리를 잡고 앉으면, 올라갈 일이 있을 때에는 아이들을 시킵니다. ‘아빠 전화기 좀 가져와라,’ ‘책 좀 가져다 달라’ 등등 아이들을 시킵니다. 그러면, 어린 두 아이들은 서로 자기가 하겠다고 다툽니다. 주로 막내가 스피드에서 언니에게 뒤지기 때문에, 심부름은 둘째 아이가 거의 다 하고, 막내는 울 때가 많습니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서로 심부름 하겠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중학생인 첫째 아이는 다릅니다. “왜 자꾸 시키느냐? 왜 나만 시키느냐? 다른 애들은 왜 안 시키느냐?” 말이 많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시키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더 들고, 철이 들게 되면 달라지겠죠! 언제 철이 들런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철이 들게 되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않고, 알아서 잘 할 것입니다.

교회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초신자일 때에는 무슨 일이든지 재미가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새롭고, 다 좋게 보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지 맡겨만 준다면, 열심으로 맡겨진 일을 감당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귀찮게 느껴지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을 꼭 해야 하는 것인지?’ 이런 생각이 들고, ‘나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다른 사람은 안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드니까, 내가 하는 일이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평하게 되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더욱 성숙해지게 되면 스스로 알아서 잘 하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보거나 의식하지도 않고, 무엇을 바라지도 않으며, 섬기는 일이 즐겁습니다. 여러분은 어디 쯤 와 있습니까?

대부분 두번째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죽을 때가 되어야 세번째 단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언제나 철이 들겠습니까? 부모님 돌아가신 뒤에야 ‘내가 좀 잘 할껄!’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스스로 교만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어떤 일에 열심을 다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신앙이 성숙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금새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불평하거나, 다른 사람을 신경 쓴다면, 안 하니만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완전한 성숙을 이루지 못한, 여전히 성숙을 이루어가는 단계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성숙시키시기를 소망합시다. 아들이 심부름 시킨다고 불평할 때에는 무척이나 화가 나는데, 사춘기를 지나는 시간이니 어찌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수 밖에요…^^

박현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