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학교에 학부모 면담을 하고 왔습니다. 미국 학교는 일 년에 2회 정도, 담임 선생님을 만나 면담을 하는데, 봄에 하는 면담은 선택 사항이고, 가을에 하는 면담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아이의 담임 선생님을 만나 면담을 했습니다. 제 아이들이 아주 뛰어난 학생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도 아닌, 아주 평범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예상했던 대로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왔습니다. “학교 생활 잘 하고 있다! 내가 이 아이의 선생이라는 것이 참 좋다! 다른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고, 좋은 학생이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계속 이렇게 잘 해주었으면 좋겠다!” 대충 이런 이야기를 형식적으로 주고 받습니다. 그런데, 제 둘째 아이의 폴더에는 이런 노트가 붙여져 있었습니다; “Afraid to make mistakes!” – “실수 하는 것을 두려워함!”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노트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결론은 “실수를 용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학창시절을 주로 한국에서 보냈는데, 그 때에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시험을 보고 문제를 틀리게 되면, 손바닥을 맞았고, 틀린 정도가 심하면 엎드려서 엉덩이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정서가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가운데도 표출되었나봅니다. 숙제는 완벽하게 해가야 하며, 문제를 틀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다 배운 것인데, 그 문제를 틀린다는 것은 잘 듣지 않았다는 것이요, 수업시간에 장난을 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려버립니다. 그러니, 아이를 닥달하는 일이 많고, 결국, 아이는 학교에 가서도 실수하는 것을 큰 잘못으로 생각하고, 실수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성장하는 과정에 있어서 완벽할 수는 없고, 실수 없는 사람을 만들기보다, 실수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무지개 색깔들의 철자를 기억 못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는데, 그 나이에는 무지개 색깔들의 철자를 정확히 몰라도 괜찮답니다. 소리나는 대로 대충 쓸 줄 알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완벽함을 요구하신다면, 우리는 모두 큰 일이난 것이며, 우리는 모두 절망입니다. 물론,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거룩함이라는 완벽을 목표로 하지만, 그 완벽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는 것이요, 우리는 실수를 하고, 실수를 극복함을 통하여 그 완벽함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수를 용납해야 하겠습니다. 실수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통해 배우는 신앙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박현수 목사